<치 : 지구의 운동에 대하여>로 천재성을 증명한 작가 우오토(Uoto)의 데뷔작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작품 <100미터>입니다. 단순히 누가 더 빠르냐를 겨루는 스포츠물을 넘어 재능과 노력, 그리고 인생의 허무와 구원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걸작이네요. 시작부터 추천하면서 리뷰를 작성해봅니다.
1. 기본정보
- 제목 : 100미터
- 원작 : 우오토 만화 100미터
- 감독 : 켄지 이와이사와
- 장르 : 스포츠, 성장, 드라마, 철학
- 러닝타임 : 106분
- 관람등급 : 전체 관람가
- 제공 : 넷플릭스 공개(2025. 10. 8.)

2. 간략줄거리
초등학생 100미터 달리기 전국 1등인 타고난 천재 토가시. 그는 어느 날 하굣길에 폼은 엉망이지만 죽을 듯이 달리는 전학생 코미야를 봅니다. "왜 그렇게 달리냐"는 질문에 코미야는 답합니다. "현실보다 몸이 더 힘들면, 잡생각이 흐릿해지니까" 불우한 가정환경과 고통스러운 현실을 잊기 위해 코미야는 도피처로 달리기를 택했던 것입니다.
그런 코미야에게 토가시는 인생을 바꿀 주문을 알려줍니다.
"세상에는 단순한 규칙이 있어. 100미터를 누구보다 빨리 달리면 다 해결돼"
그 말은 코미야에게 도피가 아닌 목표가 되었고, 토가시의 코칭 아래 둘의 관계는 조금 더 성장하고 좋아집니다.
학교 운동회 100미터 달리기에서 코미야는 출발 직후 넘어지지만 토가시의 응원에 힘입어 기적처럼 역전 우승을 해내며 처음으로 성취감을 맛봅니다. 어느날 코미야는 토가시에게 자기와 경주를 해주겠냐는 부탁을 하게 되고 둘은 같이 연습했던 곳에서 경주를 합니다. 그 경주에서 전력질주를 한 둘의 경기는 코미야의 승리로 끝났는데, 다음날 코미야는 갑작스러운 집안 사정으로 전학을 가게 됩니다. 아마도 전학 전 마지막으로 토가시와 경주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았습니다.
중학생이 된 토가시는 여전히 1등을 이어가면 주목받은 선수로 자라지만, 중학교 3년동안 생각만큼 기록도 늘지 않고 몸도 말을 듣지 않는 것 같아서 일반고등학교로 진학을 하게 됩니다.
육상부 해체 위기를 막기 위해 부상으로 꿈을 접었던 선배 니카미와 함께 주 종목이 아닌 혼성 800미터 계주에 도전하는데, 100미터라는 고독한 싸움이 아닌 동료와 바통을 주고받는 연대 속에서 토가시는 달리는 즐거움을 되찾고 준우승을 이뤄냅니다.
반면, 니시자와 고교로 진학한 코미야는 철저한 고독 속에 있었습니다. 최고 속도에 다다르면 트라우마로 몸이 굳는 불안 증세를 겪던 그는, 전설적인 선수 자이쓰에게 충격적인 조언을 듣습니다.
"불안은 대처할 대상이 아니다. 네 자신이 널 시험할 때의 감정이다. 보잘것없는 세포 집합체인 인생 따위 내던져라"
이 말에 각성한 코미야는 고등학생 전국 결승전에서 다시 만난 토가시와 맞붙습니다. 폭우가 쏟아지는 트랙, 빗속을 뚫고 나가는 처절한 승부 끝에 코미야는 1위, 토가시는 2위를 기록합니다.
10년 후 토가시는 실업팀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는 있지만 간신히 계약을 연장할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은 점점 떨어지고 있는 상황인데, 어느날 육상부 친목회에서 만난 선배 가이도의 조언을 듣고 다시 일어설 힘을 얻습니다.
"현실 도피는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가장 치열한 자세다. 달리는 이유를 알면 현실은 얼마든지 도피할 수 있다."
그러게 힘을 얻은 토가시는 뜻밖의 근육파열 부상을 당하고 1년간 운동을 쉬라는 의사의 권유에, 어제처럼 사느니 오늘 전력 질주로 태워버리겠다는 각오로 재활치료를 받으며 일본 선수권 대회 준비를 합니다.
일본 선수권 결승전, 운명의 출발선.
총성소리와 함께 출발한 선수들 사이에서 앞으로 치고 나가는 코미야와 토가시.
화면은 선두에서 동시에 발을 디딛는 둘의 다리로 클로즈업되면서 예전에 둘이 같이 달렸던 그 장면으로 오버랩되고, 결승전을 통과하는 두 사람의 희망의 얼굴로 전환되면서 영화는 끝이 납니다

3. 관람포인트
전율 그 자체, 비 내리는 트랙의 카메라 무빙
이 영화의 작화와 연출은 그야말로 미쳤습니다. 특히 고등학교 시절, 갑자기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펼쳐지는 결승전 장면은 단연코 이 영화의 백미입니다. 스타팅 블록을 점검하는 정적인 순간부터 결승선을 통과하는 폭발적인 순간까지, 카메라는 마치 빗방울이 된 것처럼 선수들의 근육과 거친 호흡을 따라 춤을 춥니다. 단순히 달린다는 행위를 넘어, 빗속을 뚫고 나가는 그 속도감이 스크린을 뚫고 나올 듯 생생합니다.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영화를 볼 가치가 충분합니다.
"100미터를 누구보다 빨리 달리면 다 해결된다"는 말의 진짜 의미
어린 토가시가 던진 이 말은 언뜻 보면 만화적인 과장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어느 한 분야의 최고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남김없이 쏟아부었을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훈장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렇게 극한의 노력을 통해 정점에 서 본 사람은 그 태도와 경험만으로도 다른 어떤 분야에서도 최고가 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토가시의 저 대사는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성공의 본질과 그것이 가져다주는 기회를 꿰뚫는 통찰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가슴에 박혀 오래도록 생각나는 철학적 명대사
이 영화는 대사 하나하나가 인생을 관통하는 서적과도 같습니다.
"불안은 대처할 대상이 아니다. 내 자신이 널 시험할 때의 감정이다. 인생은 패배할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고, 그곳에 삶의 묘미가 있다. 영광 앞에서 대가를 치러야 할 때, 보잘것없는 세포 집합체인 인생 따위를 내던지면 된다."
<전설적인 선수 자이쓰, 멘탈 관리는 어떻게 하고 불안 대처법을 알고 싶다는 코미야의 질문에 대한 답>
"현실 도피는 내 자신에 대한 기대야. 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자세다. 설령 주변이 어떤 정론을 내세워도 나는 나를 인정한다. 달리는 이유를 알면 현실은 얼마든지 도피할 수 있다."
<만년 2인자 가이도, 현실을 묻는 토가시에게>
"진심으로 달리면 다 날아가. 날카롭게 다듬은 세계는 빛이 나. 그런 풍경을 본 적 없다면 이번 달리기에서 그 풍경을 보자"
<토가시, 기록의 허무함에 빠진 코미야에게>
"희망, 실망, 영광, 좌절, 피로, 만족, 초조, 성취, 그리고 희로애락. 그 모든 걸 100미터에 담아 최고의 10초를 만끽하세요."
<자이쓰, 은퇴를 말하며 결승전을 뛰는 선수들에게 남긴 말>

4. 총평
영화 <100미터>는 결과보다는 과정, 기록보다는 찰나의 몰입을 예찬합니다.
마지막 결승전, 총성과 함께 튀어 나가는 토가시와 코미야. 화면은 성인이 된 두 사람의 다리에서 어린 시절 함께 달리던 그 앳된 다리로 오버랩됩니다. 누가 1등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결승전을 통과하는 두 사람의 얼굴에 서린 '희망' 그 자체가 정답이니까요.
우리는 살면서 자주 묻습니다. "이걸 해서 뭐 해? 어차피 다 사라질 텐데"
그 허무함에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이 영화 속 인물들은 달립니다. 기록이라는 감옥에 갇혀있던 코미야도, 부상의 고통에 갇혀있던 토가시도, 결국 "진심으로 달리면 다 날아가. 날카롭게 다듬은 세계는 빛이 나"라는 말처럼 순수한 몰입의 순간에서 구원을 찾습니다.
삶이 권태롭거나 무언가에 미치도록 몰입해 본 기억이 희미해진 분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합니다.
당신의 심장 박동을 다시 뛰게 만들 최고의 100분, 아니 최고의 10초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