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가 우리나라 단편영화 스트리밍을 해주고 있습니다. 넷플릭스로 인해 영화산업이 망할 거라는 전망이 있긴 하지만 독립영화를 스트리밍 하는 것으로 단편영화에도 관심과 시청(?)을 하게 만드는 것은 좋은 점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정연주 배우의 날 선 눈빛과 이지우, 송예림 두 아역 배우의 날 것 그대로의 연기가 압권인 작품입니다.
분노로 시작했다가 연민과 묘한 유대감으로 끝나는 자경의 감정 변화가 매력이고 볼거리였습니다.
1. 기본정보
- 제목 : 손님
- 장르 : 드라마, 가족, 독립영화, 인디영화
- 감독 : 윤가은(대표작 <우리들>, <우리집>)
- 배우 : 정연주(자경 역), 이지우(나루 역), 송예림(기림 역)
- 러닝타임 : 18분
- 관람등급 : 전체관람가

2. 간략 줄거리
고등학생인 자경(정연주)은 아빠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배신감과 분노가 가득차고 화가 가득한 자경은 아빠와 바람난 여자의 집을 알아내 찾아가 문을 쾅쾅 두드립니다. 몇 번의 거친 두드림 끝에 빼꼼히 열리는 문틈 사이로 9살 나루(이지우)와 6살 기림(송예림), 두 어린 남매가 서 있습니다.
다짜고짜 집으로 밀고 들어간 자경은 집안을 뒤지며 아빠의 내연녀를 찾지만, 그녀는 회사에 가고 없습니다.
방안을 살피던 자경은 자신이 아빠에게 선물했던 지퍼 라이터를 발견하고, 아빠가 이곳에서 두 집 살림을 하고 있음을 확신하게 됩니다.
분노와 화가 잔뜩한 자경과 달리, 아이들은 큰 동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에게 짜증을 내는 '모르는 사람' 자경에게 주스와 우유를 건넬 정도로 순진하고 착한 아이들입니다.
자경은 내연녀가 집에 올 때까지 기다릴 생각입니다. 아이들은 평소처럼 둘만의 시간을 보냅니다. 건조대의 빨래를 걷어 개는 의젓한 나루와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는 기림. 그러다 기림이 나루의 장난감을 망가뜨리며 다툼이 벌어지고, 다친 기림의 이마가 찢어져 피가 나는 소동이 일어납니다.
나루의 일기장을 들춰 보기도 하고, 홧김에 아빠와 내연녀의 칫솔을 변기통에 버리기도 하며 내연녀를 기다리는 자경. 그때 이마를 다친 기림이 자경에게 다가와 "언니"라 부르며 밴드를 붙여달라고 합니다. 기림은 밴드를 붙이는 자경의 이마에 난 상처를 보고는 "아프냐"며 걱정스런 눈빛을 보입니다. 자경의 마음이 조금씩 누그러지는 순간입니다.
그러던 중 자경의 아빠가 집에 찾아오고, 자경은 황급히 방안으로 숨어 아빠와 아이들을 지켜봅니다.
아빠를 잘 따르는 기림과 달리, 나루는 아빠를 멀리하고 피합니다. 잠시 짐을 가지러 들른 아빠는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고 집을 떠납니다. 마치 다시 돌아오지 않을 사람처럼 말이죠.
아빠가 떠난 후, 배고픈 아이들을 위해 라면을 끓여준 자경은 젓가락질 하는 아이들의 손을 보고 놀랍니다. 아이들 모두 왼손잡이였습니다. 자경 또한 왼손잡이입니다. 그들을 통해 핏줄의 증거를 확인한 셈입니다. 그때 내연녀가 집에 거의 다 왔다는 전화가 걸려 오고, 자경은 묘한 표정으로 그 집을 나서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3. 관람 포인트
분노가 연민으로, '모르는 사람'에서 '언니'로
자경은 처음에는 분노에 가득 차 있었지만, 낮 동안 부모 없이 방치된 채 스스로 생활하는 아이들을 보며 묘한 연민을 느낍니다. 서로가 아빠(가족)에게서 방치된 존재라는 사실에서 오는 씁쓸한 연대감과 동질감이죠.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들을 향한 자경의 감정은 적개심에서 연민, 그리고 알 수 없는 책임감으로 변해갑니다. 결정적으로 라면을 먹는 아이들 또한 자신과 똑같은 '왼손잡이'라는 것을 확인했을 때, 자경은 이들이 부정할 수 없는 자신의 동생임을 본능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집을 나서며 "문단속 잘해라. 모르는 사람에게 함부로 문 열어주지 마라"며 투박한 잔소리를 남기는 자경. 그것은 이 아이러니한 관계 속에서 피어난, '가족'으로서의 최소한의 보호 본능이자 애정이었을 것입니다.
신발 속의 장난감 조각, 떨칠 수 없는 아픔
아빠가 떠난 직후, 분노한 나루는 자신이 그토록 아끼던 장난감을 내던져 산산조각이 납니다. 동생 기림이 조금 망가뜨렸다는 이유로 때리기까지 했던 그 소중한 물건을, 아빠가 떠난 절망감, 현재의 상황 앞에서 스스로 부숴버린 것입니다.
자경이 그 집을 나와 거리를 걸을 때, 발바닥에 불편함을 느껴 신발을 벗어 보니 그 산산조각난 장난감 조각이 보입니다.
자경은 그 집을 벗어났지만, 신발 속에 들어온 아주 작은 조각이 걸을 때마다 발을 찌르며 아프게 했습니다. 이는 결국 자경이 아이들을 뒤로하고 떠나왔음에도, 남겨진 아이들이 주는 아픔과 불편한 마음을 완전히 떨쳐낼 수 없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연출입니다.

비록 작은 조각일지라도, 자경의 마음에 깊이 박힌 '가시'같은 연민을 의미하는 것이죠.
낮동안 엄마 아빠 없이 스스로 생활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서로가 아빠(가족)에게 방치된 존재라는 것을 자경은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씁쓸한 연대감과 동질감을 느낍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경은 처음의 분노보다는 연민과 묘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자신과 똑같이 아이들도 왼손잡이라는 것을 보고 난 후에는 진짜 동생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듯 보입니다.
처음에는 내연녀의 자식들로만 보였던 나루와 기림이 사실은 자신과 똑같이 아빠에게 방임된 피해자라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 이 영화의 매력포인트입니다. 특히 마지막 문단속 당부는 불청객이자 '모르는 사람'이었던 자경이 '언니'로서의 위치로 이동하는 중요한 장치입니다.
4. 총평
영화의 제목은 '손님'이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진정한 손님은 누구였는지 되묻게 됩니다. 아이들의 삶에 잠시 들러 헛된 희망과 사탕 몇 개만 던져주고 무책임하게 떠나버린 아빠야말로, 그 집의 가장 나쁜 '손님'이 아니었을까요.
반면 분노를 안고 찾아온 불청객 자경은, 아이러니하게도 아빠의 빈자리를 채우며 아이들에게 라면을 먹이고, 상처를 치료해줍니다. 어른들이 저지른 무책임한 일들을 수습하고 감당하는 것은 결국 남겨진 아이들의 몫이라는 점이 아픈 영화 <손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