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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쟝센단편영화제 최우수 작품상 <자매의 등산>

by space1975 2025. 12. 28.

넷플릭스의 장단점을 굳이 논하고 싶지 않지만, 가장 큰 장점은 상업영화가 아닌 것들을 안방에서 볼 수 있게 해준다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예산 독립영화에도 투자를 해주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라도 좋은 영화들을 제공해주는 것만으로도 좋네요. 그런 덕분에 여느 때 같으면 있는줄도 몰랐을 이런 좋은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오늘 리뷰는 <자매의 등산입니다.>

 

1. 기본정보

 - 제목 : 자매의 등산

 - 감독 : 김수현

 - 출연 : 심해인(은지 역), 강진아(미정 역)

 - 장르 : 드라마, 블랙코미디

 - 러닝타임 : 18분

 - 수상내역 : 2025 제21회 마쟝센 단편영화제 폼행제로 최우수 작품상, 배우상(심해인)

                    제26회 제주여성영화제 작품상, 제25회 전북독립영화제(배우상)

 - 관람등급 : 12세이상 관람가

 

<자매의 등산>

2. 간략줄거리

청각장애인 동생 은지(심해인)과 언니 미정(강진아)는 자매지간입니다. 

둘이 씩씩거리며 산을 오르는 장면에서 영화는 시작됩니다. 은지는 앞서있고 미정은 뒤에서 숨을 헐떡이며 따라갑니다. 

은지를 따라가던 미정이 더는 못오르겠다고 내려가려 할 때마다 은지는 언니를 붙잡고 산으로 이끕니다. 

둘이 티격태격하며 산을 오르는 이유가 있습니다. 

 

미정에게 파혼을 선언하고 사라진 예비신랑이 이 산 속 절에서 스님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혼인을 깨고 대체 어떻게 자기 혼자 태평하게 살고있는지 그 모습을 봐야겠다며 언니 미정을 끌며 산으로 올라가는 은지입니다. 정작 언니 미정은 왜, 뭐때문에 가냐며 역시나 청각장애인인 부모님의 신발사는 걸 도와줘야 한다며 다시 내려가려 합니다.

 

티격태격 싸우며 우여곡절 끝에 산 속 절에 다다른 두 자매. 그곳에서 은지의 형부이지 한때 미정의 약혼자였던 스님을 찾는 헤프닝이 벌어지고, 그러는 과정에서 두 자매는 서로의 감정이 폭발하여 싸우고 다시 서로의 진심을 알게되는 유쾌한 블랙코미디 영화입니다. 

 

3. 관전포인트 - 웃음 뒤에 숨겨진 묵직한 울림

코다(CODA) 언니와 농인 동생의 '소리 없는 아우성'

이 영화가 단순한 소동극을 넘어 수작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자매의 설정에 있습니다. 

언니 미정은 청각장애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청인 자녀, 즉 코다(CODA)입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가족과 세상을 연결하는 통역사이자 보호자로 살아왔습니다. 

 

절에 도착해서도 남자를 찾지 못하는 미정은 습관처럼 그냥 내려 가자며 자기가 처한 상황을 회피하려 합니다. 

이에 폭발한 은지는 수어로 언니를 몰아세웁니다. 

"엄마 아빠 일엔 나서서 잘만 따지면서, 왜 정작 네 일엔 한마디도 못하고 바보처럼 당하고만 있어"

 

그 때 미정이 토해낸 대사는 코다로서의 삶의 무게를 적나라게 보여줍니다.

"나 삼십 평생 너 대신해서 세상이랑 싸웠어. 근데 여기서 또 하라고? 나 더 말하기 싫어. 비참해"

 

 

미정의 침묵은 비겁함이 아니라 언어의 피로였습니다. 평생 누군가를 대변하느라 정작 자신의 감정은 돌볼 여력이 없었던 지친 영혼이었습니다. 말에 지친 언니와 말을 못하는 동생이 서로의 머리채를 잡고 뒹구는 산사 앞마당의 육탄전은 그 어떤 화려한 대사보다 처절한 서로에 대한 사랑 고백처럼 다가왔습니다. 

 

자매가 영겨 붙어 싸우는 난장판을 말리기위해 뛰어온 스님, 그가 바로 그토록 찾고 싶어했던 미정의 전 남자친구였습니다.  미정과 약혼자는 재회를 했고, 갑자기 왜 그랬는지 제대로 말을 못들은 것 같다는 미정의 말에 남자는 아버지가 결혼을 반대하셨고,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출가했다는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자매의 등산>

 

아버지의 죽음을 핑계로 도망친 남자의 유약함 앞에 자매는 각자의 방식으로 응징을 합니다.

미정은 욕설을 퍼붓는 대신 조용한 수어로 저주를 날립니다. 

"(수어) 나는 너의 인생이 씹창났으면 좋겠어" 

 

하지만 이것만으로 관객의 분노가 풀리지 않겠죠. 바로 그 순간 동생 은지가 나섭니다.

은지는 방으로 들어가 다짜고짜 형부의 머리통을 후려칩니다. 언니의 정신적 저주와 동생의 물리적 타격이 합쳐져 비로소 완벽한 복수가 완성되는 순간입니다. 그동안 막혔던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렇게 소동이 끝난 깊은 밤, 산사 방에서 은지와 미정은 함께 밤을 보냅니다.

그때 은지가 미정에게 자기도 언니를 위해서 뭔가를 해주고 싶었다는 속마음을 말합니다. 예전에 자기를 위해 언니가 미용실에가서 대신 화를 내줬다면서 말이죠. 그리고 결혼식 축가로 준비했다며 쿨의 아로하를 부릅니다. 

 

음정도 박자도 엉망이고 발음은 어눌하지만, 평생 언니의 보호만 받던 동생이 언니의 결혼식을 위해 준비한 그 노래는 이 영화에서 최고의 명장면이었습니다. 노래 후 언니에게 건넨 "언니, 파혼 축하해"라는 한 마디는 이별의 아픔을 치유하는 가장 완벽한 위로인 듯 싶었습니다. 

 

다음 날 새벽, 자매는 산을 내려옵니다. 올라갈 때의 발걸음이 분노와 억울함으로 무거웠다면 내려가는 길은 한결 가볍고 경쾌합니다. 미정은 똥차 같은 남자에 대한 미련을 털어냈고, 은지는 언니를 위해 무언가 했다는 뿌듯함을 얻었으니까요. 

 

영화의 엔딩은 귀여운 복수로 마무리됩니다. 

은지의 배낭 속에 들어있는 의외의 물건, 바로 스님이 된 형부의 고무신입니다. 

새벽에 나오면서 몰래 형부가 될 뻔했던 스님의 고무신을 훔쳐나온 것입니다. 

은지의 소박하고 소심한 복수가 어린 은지답다고 느껴졌고, 그래서 더 따뜻한 느낌의 영화였습니다. 

 

<자매의 등산>

4. 총평

영화 <자매의 등산>은 겉으로는 가볍게 웃기는 자매 코미디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코다 언니와 농인 동생의 언어의 비대칭이 얼마나 큰 피로와 상처를 남기는지를 유머와 싸움 장면 속에 녹여낸 작품입니다. 

 

전 남친과의 관계를 정리하는 사건을 통해서 언니와 동생이 서로 같은 편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고, 파혼이 파국이 아니라 새 출발로 느껴지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무엇보다 말을 해야하는 순간에 자신의 말을 참고 살아가는 코다(CODA)의 아픔과 슬픔을 동생 은지를 통해 터트리게 만들어 숨을 쉴 수 있게 해주는 두 자매의 이야기를 소소한 재미를 통해 보여주는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