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의 한파가 무섭네요. 어디 나가지 않고 집에서 넷플릭스 영화 보는 것으로 주말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번 리뷰는 정주리 감독의 <다음 소희>입니다. 배두나와 김시은 배우가 멋진 연기를 보여줬고, 우리 사회의 환부를 무겁게 직접적으로 건드리는 작품으로 평가되는 것 같습니다.
1. 기본정보
- 제목 : 다음 소희
- 장르 : 드라마
- 감독 : 정주리
- 배우 : 김시은(소희 역), 배두나(유진 역)
- 러닝타임 : 138분
- 모티브 : 2017년 전주 콜센터 현장실습생 사망 사건

2. 간략 줄거리
1부 : 소희 이야기
소희(김시은)는 웃음이 많고 춤추는 것을 좋아하는 밝고 당찬 열여덟 살 고등학생입니다. 실업계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소희는 졸업을 앞두고 담임 선생님의 추천으로 대기업 통신회사의 하청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가게 됩니다.
하청 콜센터지만 대기업이라는 선생님 말씀에 나름 기대를 하고 출근을 했지만 현실은 참혹했습니다. 헤드셋 너머로 쏟아지는 진상 고객들의 욕설과 성희롱적인 발언들을 견뎌야 하는 건 예사롭지 않게 일어나는 일상이고, 해지를 원하는 고객을 온갖 감언이설로 막아야 하는 '해지 방어' 업무에 시달립니다. 이름만 다를 뿐, 그곳 콜센터에 있는 모든 실습생들은 감정을 지운 채 경쟁에 내몰린 '또 다른 소희들' 입니다.
그렇게 일하던 어느 날, 과도한 업무 압박을 견디지 못한 팀장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회사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직원들에게 입단속을 시키고, 비밀을 유지하겠다는 각서를 받아내는 비정함을 보입니다. 소희는 회사가 취하는 태도에 대한 분노와, 뭘 어지 못하고 현실에 수긍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지만, 시스템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체념하는 법을 배우고 다시 본연의 일만 하게 됩니다.
그렇게 일만 몰두하여 콜센터에서 최고의 실적을 달성한 소희에 대해 회사는 갖은 핑계를 대며 약속한 월급을 제때에 지급하지 않았고, 늦게 준 월급에는 소희가 달성한 성과에 대한 보상금도 없었습니다. 아무리 발버둥 쳐가며 일을하고 성과를 내도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없는 현실, 실오라기 하나의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 미래 앞에서 소희는 모든 것을 상실한 채 스스로 생을 마감합니다.

2부 : 유진 이야기
영화는 소희의 죽음 이후 새로운 국면을 보여줍니다. 휴직까지 내가며 오랜 시간동안 아픈 엄마를 간병하며 돌봤지만 결국 엄마는 돌아가시고 회사에 복귀한 형사 유진(배두나)이 등장합니다.
소희가 살던 동네의 파출소로 발령받은 유진은 소희의 자살 사건을 담당하게 됩니다. 사 유진은 소희가 살아있을 때 우연히 스치듯 마주친 적이 있었습니다. 유진이 가끔 춤을 추러 들르던 연습실이 바로 소희가 춤을 추던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때는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했던 때였지만요.
유진은 소희의 사망 사건이 단순한 자살이 아님을 직감합니다. 학교, 회사, 교육청 등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시스템이 어떻게 한 아이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는지 하나하나 파헤치며, 이 사회의 민낯을 낱낱이 드러냅니다.
3. 관람 포인트
소희가 주인공인 1부와 유진이 주인공인 2부로 나눈 영화의 독특한 구성이 매력적이었습니다. 1부에서는 소희의 시선을 따라가며 마치 내가 소희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내가 소희가 되어 웃고, 춤추고, 위로해주고, 위로가 필요한 생활의 고통을 체험하듯 영화를 보게 됩니다.
소희가 사라진 2부에서는 유진의 시선으로 소희의 흔적을 쫓습니다. 주인공 시점에서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상황이 바뀌는 독특한 구성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소희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게 한 뒤, 유진과 함께 분노하고 우리들에게 또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만드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 같았습니다.
소희와 유진은 같은 춤 연습실을 공유했습니다. 시간차가 있지만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에 있었고 스치듯 지나가기도 했습니다.
이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의도입니다. 같은 나라에 살아가면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에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함께하고 마음이 이어지는 거리에 있지만, 각자의 사정과 무감각, 무관심으로 남의 일에 관심을 두지 않고 외면하고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과도 같습니다.
유진이 소희의 사망 사건에 그토록 집착했던 이유는, 어쩌면 그때 그 춤 연습실에서 소희를 잡아주지 못했다는 미안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영화는 단순히 악덕 기업 하나를 비판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취업률 성과에 급급해 아이들을 사지로 내모는 학교, 이를 방관하고 있는 교육청,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사회 시스템 전체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학생이 일하다 죽었는데 누구 하나 책임지는 어른이 없다는 유진의 절규는 이 영화가 던지는 가장 아픈 메시지입니다.

4. 총평
밝고 웃음많은 소희가 콜센터에 실습을 가면서부터 영화는 급격히 어두워져,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거대한 부조리 앞에서 숨이 턱 막히는 답답함을 줍니다. 그리고 결국은 소희에게 미안한 마음만 가득 남게 됩니다.
높은 취업률을 자랑한다며 홍보하고 있는 학교의 홍보물 뒤에는 이렇게 악의적이고 비도덕적인 현실이 숨어있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고 믿겨지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투쟁하고 시간이 흘러야 우리 사회에서 이런 말도 안되는 일들이 사라질 수 있을까요? 돈과 권력보다 사람이 먼저인 세상, 더 이상 피해받고 억울해하는 사회적 약자들이 발생하지 않는 시스템이 갖춰지기를 바라게됩니다. 순수하고 웃음 많던 소희가 현실에 부혀 죽음 아니면 희망이 없다는 생각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일. 이땅에 소희와 같은 다음의 소희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고 기도합니다.
현재 내 일이 아니라고 외면하고 무관심다면, 언젠가 그와 같은 일이 내게 닥쳤을 때, 다른 사람들도 외면하고 무관심해집니다.
우리는 다음 소희를 만들지 않기 위해 현재 유진과 같이 움직여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제59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부문 여자 신인연기상을 수상한 김시은 씨의 수상소감으로 글을 마칩니다.
이 말이 지금 디선가 홀로 버티고 있을 수많은 소희들에게 닿기를 바랍니다.
"지금도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소희들에게, '힘들 때는 힘들다고, 아플 때는 아프다고 이야기하고, 그렇게 건강하게 사랑도 많이 받고 사랑도 많이 주며 같이 잘 살아보자고 말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