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 불행은 인간을 어디까지 망가뜨리는가?
평범한 일상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라는 거대한 불행으로 무너졌을 때, 인간은 얼마나 나약해지고 또 어디까지 독해질 수 있을까요? 또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고, 그 불행에 대한 잘못된 공감이 타인을 향할 때 어떤 비극이 일어날까요?
2005년 9월 개봉한 영화 <살인자 리포트>는 이 질문에 대해 아주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인간의 심리가 얼마나 미약한 기반 위에 서 있는지, 그리고 그 심리를 정당화 수단으로 삼았을 때 죄책감 없이 어떤 괴물이 탄생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상처받은 치유자가 스스로 '심판자'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 벌어지는 서늘한 심리 스릴러 <살인자 리포트>를 분석해보겠습니다.

2. 기본정보
- 장르 : 심리 스릴러, 범죄
- 연출 : 조영준
- 주연 : 조여정(백선주 역), 정성일(이영훈 역), 김태한(한상우 역), 황지아(예린 역)
- 러닝타임 : 107분
- 관람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 개봉일 : 2025년 9월 5일
3. 간략 줄거리 : 107분의 위험한 인터뷰
특종에 목마른 베테랑 기자 백선주(조여정)는 어느 날 한 남자로부터 전화를 받습니다. 자신이 연쇄살인범이라 주장하는 정신과 의사 이영훈(정성일)이 단독 인터뷰를 요청한 것입니다.
"기자님께서 인터뷰에 응하면 피해자를 살릴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인터뷰를 거부하면 3일 뒤 또다른 피해자가 생긴다는 협박과 함께 말이죠.
고민 끝에 형사이자 연인인 한상우(김태한)와 공조하여, 인터뷰가 끝나는 즉시 그를 체포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이영훈이 안내한 호텔 스위트룸으로 향합니다.
오후 3시 정각, 밀실에서 마주한 두 사람. 영훈은 자신의 살인이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치료'였다고 고백합니다.
자신을 찾아온 환자들 중 타인의 괴롭힘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그 가해자들을 자신이 대신 죽여주었다는 것. 그것이 그가 말하는 환자를 위한 '구원'이자 '처방'이었습니다.
죽어 마땅한 악인들을 처단한다는 그의 기이한 명분 앞에서 선주는 혼란을 느끼고 인터뷰는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흐릅니다.
4. 당신의 고통을 없애 드립니다.
이 영화의 빌런, 이영훈은 단순한 쾌락형 살인마, 사이코패스가 아닙니다. 그는 본래 환자의 아픔을 듣고 치료하던 평범한 정신과 의사입니다.
하지만 그 역시 과거에 사랑하던 아내와 아이를 잃고,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 받지 않는 현실에 절망했던 피해자였습니다.
자신을 죽음 끝까지 내몰았던 영훈은 어느 순간 바뀌었습니다. 그는 병원을 찾아오는 환자들에게서 자신의 과거를 봅니다. 법과 제도가 지켜주지 못해 고통받는 환자들을 보며, 그는 내가 대신 저 악인들을 치워준다면, 환자는 고통에서 치유될 것이다라는 위험한 망상에 빠집니다.

영화는 묻습니다. "이것은 구원인가, 또 다른 폭력인가?"
영훈의 살인은 환자를 위한 헌신처럼 포장되어 있고 환자들도 영훈의 대리 살인에 만족해하지만, 실상은 자신의 해소되지 않은 분노를 투영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는 스스로를 더러운 것을 치우는 청소부이자 환자를 구하는 의사라고 믿습니다.
이 지독한 자기합리화가 그를 죄책감 없는 괴물로 만든 것입니다.
5. 관람 포인트 : 심리의 허점을 파고드는 독함
<살인자 리포트>가 공포스러운 이유는 잔인한 장면 때문이 아니라, 상처받은 사람의 심리를 파고드는 방식 때문입니다.
영훈은 정신과 의사답게 사람의 가장 약한 고리를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하지만 직접 행동할 수 없고 오히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는 나약한 사람들의 은밀한 살의를 대신 실행에 옮김으로써 환자들을 공범이자 도덕적 부채감을 가진 존재로 만들어버립니다.
주인공 선주 또한 예외는 아닙니다. 기자로서의 욕망과 피해자를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그녀 역시, 영훈의 논리에 조금씩 휘말리게 됩니다. 당신이라면 어땠을까? 라는 영훈의 질문은 화면 너머 관객에게까지 서늘하게 닿습니다.

6.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 : 죄책감의 부재
영화가 끝난 뒤 가장 소름 끼치는 지점은 영훈에게 죄책감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자신의 살인을 의료행위의 연장선으로 생각합니다. 고통의 원인(가해자)를 제거했으니 환자는 나았다는 기괴한 논리.
불행이 인간을 얼마나 독하게 만드는지, 그리고 그 독기가 잘못된 신념과 만났을 때 어떤 비극이 탄생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는 과연 악인들을 처단한 다크히어로일까요? 아니면 그저 자신의 트라우마에 갇힌 살인마일까요?
영화는 섣불리 결론 내리지 않고 그 판단을 관객의 몫으로 남겨둡니다.
7. 총평
<살인자 리포트>는 권선징악의 쾌감 대신 묵직한 질문을 남깁니다. 법과 약이 해결해주지 못하는 고통 앞에서 누군가 대신 손에 피를 묻혀준다면 우리는 그에게 고마워해야 할까요? 비난해야 할까요? 죄책감은 없을까요?
마지막 병원 씬에서 오고 가는 두 사람의 건조하지만 오싹하고 슬픈 대화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에도 오랫동안 가슴에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