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계절처럼 찾아오고 언젠가는 또 지나갑니다. 영화 <봄날은 간다>는 그 짧고도 찬란한 순간을 가장 현실적으로 담아낸 작품입니다. 허진호 감독 특유의 감정선 위에서 유지태와 이영애는 사랑의 시작과 끝, 그 사이의 미세한 온도 차를 섬세하게 그려냈습니다.

1. 기본정보
- 장르 : 드라마, 멜로, 로맨스
- 감독 : 허진호
- 주연 : 이영애(은수 역), 유지태(상우 역)
- 러닝타임 : 106분
- 관람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 개봉일 : 2001년 9월 28일
2. 간략 줄거리
사운드 엔지니어 상우(유지태)는 라디오 PD 은수(이영애)와 자연의 소리를 채집하는 프로그램을 함께 작업하기 위해 처음 만나게 됩니다. 강릉과 서울을 오가며 녹음을 하던 두 사람은 바람, 파도, 새소리, 빗소리처럼 일상의 소리를 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리고 서서히 서로의 마음을 마이크에 포착하듯 느껴가며 서로 사랑에 빠집니다.
집까지 바래다 준 상우에게 은수가 건넨 "라면 먹을래요?"라는 말 한마디는 일상의 언어이자 사랑의 서막이 되고, 봄 햇살처럼 따뜻하고 조심스러운 연애가 시작됩니다.
하지만 봄날은 그리 오래가지 않습니다. 은수의 말로 시작된 연애는 봄날처럼 따뜻했지만, 과거 이혼의 상처를 지닌 은수는 결혼을 꿈꾸는 상우의 진심이 부담스럽습니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그 부담은 커지고 공교롭게도 방송국에서 만난 새로운 사람에게 관심이 끌리고 있던 은수였습니다.
둘의 관계는 조금씩 멀어지고 결국 은수는 "한 달만 떨어져 있어 보자"고 말하며 거리를 둡니다. 상우의 봄날은 차갑게 식어가지만 상우는 은수가 그립고 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계절이 변하듯 사람의 마음도 그 사랑도 변합니다.
3. 사랑과 현실의 온도차
은수는 결혼과 이혼의 경험이 있는 여자였고, 상우는 순진하고 풋풋한, 연애경험이 없어 보이는 남자입니다.
처음 은수에게 상우의 순수함은 매력적이었을 것입니다. 채집하고 있는 바람소리, 빗소리, 물소리 같은 남자라고 생각했을 듯 싶네요.
하지만 그런 사람이 결혼하자라는 구체적인 말로 다가오는 순간, 은수에게는 과거의 실패가 리플레이되기 시작했을지 모릅니다.
상우가 알고 있는 사랑과 은수가 경험한 현실 사이의 온도차. 그게 은수를 겁나게 만들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술 먹고 찾아오고 연락없이 집 밖에서 무작정 기다리는 상우의 행동들.
사랑하는 사람 입장에선 애틋하지만, 조금 식어가는 사람 입장에서는 부담이고 짐이 됩니다.
내가 없으면 이 사람 어쩌나... 하는 책임감까지 느껴집니다.
상우의 사랑은 너무 뜨거웠고, 은수의 마음은 이미 식어가는 중이었습니다. 같은 행동도 사랑할 때는 열정적이지만, 마음이 떠날 때는 집착처럼 보이니까요.

4. 총평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잔인할 만큼 정직하고 그래서 가장 마음 아픈 장면입니다.
서로 헤어지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던 상우와 은수. 복사용지에 손이 베인 은수는 무의식적으로 팔을 들어 피를 멈추게 합니다. 그 순간, 그 행동을 가르쳐줬던 상우가 떠오릅니다. 사랑했던 사람은 이렇게 우리 몸에, 일상에, 습관 속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찻집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은 건조하고 의미없는 안부의 말을 짧게 주고 받습니다. 몇 발짝 앞서 걷는 상우, 상우 뒤를 따라오는 은수. 은수가 상우에게 팔짱을 끼며 "같이 있을까?"라고 묻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상우가 담담히 은수의 팔을 내저으며 은수에게 받았던 작은 화분을 돌려줍니다.
처음엔 상우가 뜨겁게 매달렸고 은수가 식어버려 관계가 끊이 났는데, 이제는 상우가 미지근합니다.
그렇게 짧은 인사를 나누고 서로 반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하는데, 은수가 다시 돌아와 상우의 옷매무새를 만져주고 악수를 청합니다. 말로는 할 수 없는, 해봤자 소용없는 미안함과 작별을 악수라는 몸짓으로 전하는 것 같았습니다.
은수는 다시 뒤돌아 가지만 상우는 그 자리에서 멈춰섰습니다. 그의 표정에서는 짧은 순간 수많은 생각이 스쳐 가는 게 보입니다.
'다시 만날까? 그냥 헤어질까? 다시 만난들 또 이런 순간이 오는 게 아닐까'
한번 깨진 그릇은 다시 붙여도 금이 가 있으니까요. 그 금 사이로 또 물이 샐거란 걸, 이제는 상우도 알게 된 것입니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걸으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이 엔딩이 더 아픈 건, 누가 나쁜 사람도 아니고 누가 틀린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냥 타이밍이 맞지 않았고, 온도가 달랐고, 사랑의 무게를 감당하는 방식이 달랐을 뿐입니다.
감독은 답을 주지 않습니다. 그냥 두 사람이 각자의 길을 가는 모습만 보여줍니다.
사랑이 항상 해피엔딩인 건 아니니까요.
5. 시간이 지나니..
영화가 처음 나왔을 때는 은수의 마음과 행동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자기가 좋아하고 사귀자고 먼저 해놓고, 다른 사람이 생겼다고 헤어지자고 하는 건 용납되지 않았거든요.
순진하고 순수한 상우를 꼬드겨 마음아프게 하는 것도 맘에 들지 않았구요.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보니, 이제 은수의 마음도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풋풋하고 순수한 사랑이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은수는 알고 있었고, 그때의 상우는 전혀 알 수 없었을테니까요.
영원할 것 같던 사랑이 변해가는 과정과 그로 인한 이별의 아픔을 담백하게 그린 영화, 그래서 더욱 가슴 아프게 느껴졌던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