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바쁨을 이유로 극장 개봉했을 당시엔 영화관에서 보질 못했던 박찬욱 감독 작품 <어쩔수가없다>가 넷플릭스에 공개되었습니다. 이렇게나 빨리 OTT에 나온 게 반가워 주말에 단숨에 봤습니다.
1. 기본정보
- 제목 : 어쩔수가없다
- 감독 : 박찬욱(대표작 : 올드보이, 아가씨, 헤어질 결심)
- 출연 : 이병헌(유만수 역), 손예진(미리 역), 박휘순(최선출 역), 이성민(구범모 역), 차승원(고시조 역), 염혜란, 유연석
- 장르 : 스릴러, 서스펜스, 블랙 코미디
- 러닝타임 : 138분
-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2. 간략줄거리
제지 회사에서 25년간 성실하고 근면하게 근무해 온 유만수(이병헌). 그는 회사와 가정에 헌신하며 평생을 '펄프맨'으로 살아온 평범한 가장입니다. 하지만 외국 기업이 만수네 회사를 인수하며 불어닥친 구조조정 칼바람에 만수도 결국 정리해고 통보를 받고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됩니다.
가장으로서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재취업을 위해 여러 군데에 이력서를 내보지만, 그를 받아주는 곳은 없습니다. 설상가상 대출금 연체 고지서가 날아오며 만수의 가정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에 이릅니다.
살던 집을 내놓고, 가족 같이 키우던 개들도 처가로 보내고, 두 대였던 차를 줄이고, 남은 차마저 작은 차로 바꾸는 등 생활은 점점 쪼그라듭니다.
우아한 전업주부로 취미와 여가 생활로 테니스를 배우고 춤을 배웠던 미리(손예진)도 한가로운 일상을 포기하고, 치과에서 일을 하며 생활 전선에 뛰어듭니다.
그런 나날 속에서 매번 낙방하는 만수는 자신의 경력에 딱 맞는 제지 회사 채용 공고를 발견합니다. 하지만 자신보다 스펙 좋은 라이벌들이 이 공고를 놓칠리 없다고 생각하고 불안해 합니다. 결국 만수는 자신의 본래 자리를 되찾고 가족과 가정을 지키기 위해 기막히고 위험한 계획을 세웁니다.
그것은 바로 경쟁자들을 처리하기 위한 가짜 구인 공고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만수는 자기가 미래 비전이 있는 제지 회사의 오너인 것처럼 가짜 채용 공고를 내고 이력서를 받습니다.
지원자들 중 자기와 비교했을 때 비슷하거나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세 명을 추리는데, 그 셋이 바로 구범모(이성민), 고시조(차승원), 최선출(박휘순)입니다.

왜 가짜 구인 공고를 냈을까요? 이유는 단 하나, 그것은 바로 자신보다 우위에 있는 경쟁자들을 없애기 위해서였습니다.
만수는 경쟁자 셋을 제거해야만 자신이 취업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하나 실행에 옮기기 시작합니다.
과연 '어쩔 수 없이' 살인자가 된 만수의 계획은 끝까지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을까요?
3. 관람 포인트
'해고는 살인이다' 평범한 일상이 무너지는 공포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섬뜩한 말을 집회 현장에서 종종 보곤 했었는데, <어쩔수가없다>의 만수와 미리네 가정을 보면 그 말이 정말 맞는 말이란 생각이 듭니다. 예고 없는 해고 통보로 평생 한 우물만 판 회사원의 일상은 와르르 무너지고, 당연하게 누리던 것들을 하나둘 포기해야 하는 비참한 상황이 닥칩니다.
영화는 한 가정의 가장이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을 설득력 있게 그려냅니다. 비현실적인 설정 같지만, 어쩌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 수도 있을 것만 같은 서늘한 현실 공포를 섬뜩하지 않게 보여줍니다. 그래서 더욱 섬뜩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생존을 위한 기막힌 반전, '가짜 채용 공고'
만수가 채용 공고를 냈을 때, 자신의 경력을 살려 제지 회사를 정말로 만들어볼 생각으로 공고를 내는 줄 알았는데, 그것이 경쟁자들을 유인해 제거하기 위한 가짜 공고이고, 그 이유가 자신과 경쟁자인 사람들을 죽이려는 것이었다니,
이 영화의 가장 신선한 충격이자 완전한 반전입니다.
자신보다 스펙 좋은 경쟁자들을 죽여서라도 내 자리를 만들겠다는 만수의 계획. 무모하고 광기 어려 보이지만, 생존을 위한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점이 관객에게 묘한 아이러니를 던집니다.

괴물은 따로 있지 않다. 우리 안의 비정상성
영화는 정상적인 사람들도 자신의 안위와 일상을 지키기 위해서는 얼마든지 비정상적인 괴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살인을 저지르는 만수뿐만 아니라, 그 사실을 알게 되지만 가정을 위해 덮어두고 동조하는 미리(손예진)의 변화는 더욱 소름 끼칩니다.
또한 만수의 경쟁자인 최선출, 구범모와 그의 아내(염혜란) 역시 각자의 생존을 위해 비정상적인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극한의 상황에서 드러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기심과 광기, 인간의 서늘한 민낯을 목격하는 것이 이 영화의 매력입니다.
4. 총평
매일 야근에, 일주일에 두세 번은 회식으로 인한 과음으로 자정이 다 되어서야 집에 들어올 때가 많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야근은 밥 먹듯이 하고, 술 마시는 날의 횟수는 줄었지만 여전히 과음을 종종 하게 됩니다.
집은 밤늦게 들어와 잠만 자고 나가는 하숙집이 된 지 오래여서, 집안일을 소홀히 하거나 숙취로 고생할 때 배우자에게 자주 듣기 싫은 잔소리를 들을 때가 많은데, 그때마다 했던 변명이 '어쩔 수 없었다' 였네요.
변명이고 핑계이면서도 사실이었던 그 말. <어쩔수가없다>
가정을 이루고 나름의 책임을 지고 살아가는 이 시대의 남자들은 어쩌면 모두 같은 마음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도 어쩔 수 없는 하루를 처절히 버틴 모든 당신을 응원하며, 이 영화를 추천합니다.